말씀/설교

레위인의 첩 이야기, 사사기 19장 16절-30저

아카이브 주인장 2025. 3. 22. 21:00


사사 시대의 도덕적 타락

오늘 말씀은 사사 시대의 도덕적 타락을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 것일까요?

 

레위인에게 첩이 있었습니다. 그 첩이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레위인은 장인에게 찾아가서 여인을 데려옵니다. 그 과정에서 기브아에서 하루 묵게 되는데, 동네 불량배들이 레위인을 내놓으라고 요구합니다. 이유는 동성연애를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첩을 내놓게 되고 그녀는 윤간을 당합니다. 아침에 그녀는 죽어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첩의 시신을 가지고 레위인이 집으로 돌아와 열두토막을 내어 열두지파에게 보냅니다. 그 결과 흥분한 이스라엘이 베냐민 지파를 징벌하게 됩니다. 레위 한 사람의 부도덕, 베냐민 한 사람의 부도덕으로 내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거의 모든 남성이 죽음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의 관심을 지도자에게 둬보겠습니다.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확인해왔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이야기는 더더욱 중요합니다. 베냐민 지파는 불량배를 두둔하다 이 일을 당한 것입니다. 단 지파, 베냐민 지파, 두 지파의 몰락 모두 제사장, 즉 레위 사람의 타락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영적 레위인의 책임

 

사사기 19:1 레위 사람이 첩을 맞이했습니다. 신명기 19장에는 레위인의 결혼에 엄격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레위인은 그 규정을 무시하여 첩을 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첩이 불륜을 저지르고 친정집으로 도망가게 된 것입니다.

 

레위인이 첩을 두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지만,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레위인이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회개하고 결단하고 정신차려 제대로 살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장인을 쫓아갔습니다. 그렇게 아내를 데려와서 동족이 있던 기브아로 가게 됩니다. 베냐민 지파는 이미 타락해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직분을 맡아서 섬김을 하고 있는 우리는 영적인 레위인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섬기는 이들은 영적인 레위인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거룩하게 살아야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이 약한 자를 위해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럴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먹지 않는 자유를 선택하겠다는 바울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그 이야기를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모습을 믿음이 약한 자들이 보고 어떻게 생각할지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

사사기 19:22 동네 불량배가 처들어와서 레위인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이 분위기가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불량배들이 천사를 내놓으라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동성애자를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그 일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죄라는 것은 알려줘야 합니다. 우리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이 영향이 닿아야 합니다. 그렇게 동성애자들도 구원받아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행위 자체는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창조 질서에 반한 것입니다.

 

 

레위기 18:22 너는 여자와 동침함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동성애는 창조 질서에 분명히 어긋나며, 하나님의 주권을 거역하는 행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성찰과 회개의 필요성

집 주인이였던 노인이 불량배와 타협을 합니다. 자신의 딸과 첩을 가져가라는 것입니다. 그 레위인 때문에 자기 딸을 내어준다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요? 그럼에도 불량배들이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레위인이 자신의 첩을 밖으로 내칩니다.

 

그렇게 밤새도록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문지방을 잡았다는 것은 그 여인이 방으로 돌아오려고, 살려달라고 애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레위인 남편은 자기 목숨을 위해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더 끔찍한 것은 레위인이 죽어있는 첩에게 "일어나 가자"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돌아간 레위인은 베냐민 지파의 잘못을 선동합니다. 그 결과 큰 살육으로 인해 베냐민 지파 남성이 거의 다 죽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은 레위인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첩을 취한 이도, 불량배에게 내어 죽게 한 자도 모두 레위인이었습니다.

 

요즘에도 교회 안에 이런 비슷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누군가 잘못할 수 있습니다. 어디선가는 분명히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잘못하고 나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되는데 괜히 다른 사람을 걸고 넘어집니다. 특별히 목사, 장로, 권사, 사모 등 직분자를 걸고 넘어집니다.

 

문제가 생기면 늘 나부터 돌아보고 나부터 회개하고 나부터 행동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장거리 달리기 때문에 속상한 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붙잡고 흥분하기 전에 주님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주님의 시각에서 이 문제는 어떤 것일까? 주님이시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기를 원하실까? 성경적으로 이 문제를 대한다면 나는 어떤 말씀을 적용할 수 있을까?

신앙의 세대간 전수

마지막으로 불량배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불량배들은 가나안 땅으로 이민 온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광야를 느낀 자들의 3세대쯤 됩니다. 1세대들은 뜨거움이 있습니다. 2세대들은 잘 따라옵니다. 3세대쯤 가면 문제가 생깁니다. 성경적으로 봐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기성세대인 우리에게 있어 자녀 교육은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부모는 희생하더라도 자녀를 위해서 삽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앙이 너무 바빠서 전수되지 못할 때 일어납니다. 사사기 20장에서 베냐민 지파에서는 자기 자식들이기에 불량배들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믿는 자녀들이라고 해도 다 좋은 신앙인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 사무엘 모두 그랬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손주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 그분이 가장 중요한 분임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 레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어 경성하며 살아야 합니다. 문제가 생겼다면 내가 먼저 회개하고 돌이키며 말씀에 비추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가장 안전한 곳은 하나님과 같은 길을 걷는 것입니다.